한 젊은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팔리지 않자 피카소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왜 제 그림이 안 팔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그림은 그리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는데 말입니다. 그 비법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그러자 피카소가 젊은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림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리나?
한 작품을 얼마동안 그리느냐 물었네.”
“대체로 3일 정도 걸립니다.”
“그런가? 나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3년 정도 걸린다네.
자네도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3년 정도 걸린다면 그리는 즉시 다 팔리고 말 걸세. 3일 걸린 작품은 3년이 되어도 안 팔리지. 명작은 고난을 먹고 탄생되는 거라네.”
피카소가 현대미술의 거장이 된 것은 골방에서 붓과 오랜 씨름을 한 결과입니다.
대가로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는 겁니다.
저는 오늘 본문인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는 사도 바울의 말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습니다.
능력(能力)의 능(能)은 ‘능할 능’, ‘잘할 능’이기도 하지만, ‘견딜 능’이기도 합니다.
곧 능력이란 상황과 여건을 극복하고 오래 견뎌내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결국 그 일에 능한 자가 되고, 그 일을 잘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하나님의 능력, 곧 성령의 능력을 가짐은 그가 처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그를 둘러싼 여건에 낙담하지 않고 견디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후욕과 핍박을 당하고 만물의 찌끼 같은 삶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이를 견디어 냈기에 하나님의 각별한 은총과 성령의 능력이 더욱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가 어디 쉽습니까? 대개는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조금 손해만 와도 손 털고 뒤도 안 돌아보고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러나 성공을 꿈꾸는 자들, 어떤 일에 승리하고 싶은 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세상 어디에도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에든 반드시 대가가 있기 마련인데, 승리자나 성공자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는 바로 오래 견디는 것입니다.
한 시대의 맥을 그은 사람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 같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디어냈고,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극복한 능력자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까지 80년의 세월은 결코 짧다고도 순탄하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잘 견디어 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곧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형을 피해 도주하여 다시 금의환향하기까지 그가 살아간 세월은 그야말로 인고(忍苦)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는 그 세월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내어 결국 그가 원하는 바를 이뤘습니다.
요셉 역시 그랬습니다.
이국에서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그가 겪은 역경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늘 불굴의 의지로 이를 이겨내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욥을 볼까요. 그는 마귀가 작정하고 그를 사지로 몰아냈지만 그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참고 참았습니다.
그래서 갑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능력이란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고, 그런 자에게 승리와 성공이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 정금이 되기 위해서는, 티 없는 정금이 되기까지는 불 속에서 견디는 시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불이 뜨겁다고 박차고 나오면 정금이 될 수 없지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왕의 손에 들린 보검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귀한 보검이 되기까지는 물과 불을 수차례 통과해야 하고, 해머로 두들겨 맞아야 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것이 싫으면 그냥 쇠붙이로 이리저리 뒹굴며 살아야지요.
무조건 참아야 한다면 억울하겠지만 견디고 참는 목적이 있다면 능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온갖 고생을 참고 겪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격이 원래 순해서 그럽니까?
아닙니다.
내 자식 공부시키고 밥 먹이고 그러려고 눈 딱 감고 견디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하게 보여도 이 좁은 길을 가며 참고 견디는 것은 다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고난이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롬8:18).
지금 참지 않으면, 지금 견디지 않으면 주님의 심판 후에 영원히 고통을 견뎌야 할 줄 알기 때문에 지금을 견디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2:11,12). 주님은 누가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는 마음으로 살라고 하셨고, 또 누가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어떤 상황이나 여건을 견뎌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누가 오리를 가자고 할 경우, 힘든데 가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가야 하는 길이라면 “그래, 십리를 가주자.” 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면 능히 오리는 갈 수 있다는 거지요.
누가 자꾸 속옷을 내놓으라고 하면 사실 싸우고 싶지요.
그러나 그때 ‘겉옷까지 주자’는 심정이 되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겁니다. 주의 종들 중에도 조금 힘든 일이 있으면 양을 두고 떠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들의 결국이 어떤 줄 아십니까?
주님 때문에 조금 힘든 일을 피해간 그들은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에 봉착해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주의 일을 하면 힘든 일이 찾아옵니다.
어디 고난 없는 영광이 있습디까?
그때 그 자리에서 견디는 겁니다.
내 힘으로 안 되니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서 견디는 겁니다.
그러면 그 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1:11).
주의 일을 하다가 힘들 때가 있으시죠? 압니다. 그러나 견디십시오.
세상에서도 일하다가 눈꼴사나운 일을 경험하시죠?
이해합니다.
그러나 참고 견디십시오.
남편이 속을 너무 썩입니까?
아픔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견디면 언젠가 좋은 남편이 될 겁니다.
지금을 뛰쳐나가면 살 것 같겠지만 아닙니다.
참으세요.
견디세요.
그것이 능력입니다.
자기가 맡은 직책과 자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이겨내고 견뎌내면 주님이 착하고 충성된 자라 칭찬하실 것이고, 이 땅에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난 없는 영광이 없고 희생 없는 승리도 없다 최후의 승리자는 끝까지 인내하는 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