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인생에 비교 합니다. 태양이 뜨고 지는 잔잔한 바닷가 사실 유람선을 타고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바다가 기대 될 것입니다. 누나의 인생의 항로에는 순풍을 만나길 기대하지요 그러나 인생의 바다는 늘 순풍만은 있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편 107편에서 시인은 인생의 항로 가운데 만나는 폭풍을 가리켜 영혼이 녹게 만드는 고통으로 표현했습니다. 거친 바람과 폭풍우 앞에 인생의 배는 사실 수없이 요동하게 되는 듯합니다. 사실 배에 따라 조금 씩은 다르겠지만 한두 번 몰아치는 태풍처럼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거친 파도가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위험한 광풍이 우리 앞에 놓일 때가 우리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런 순간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위기가 기회인 것처럼 성도에게 있어서는 우리의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런 위기의 순간이 또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할 절호의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폭풍의 구름 뒤에 태양이 떠있듯이 우리 인생의 광풍 저편에서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도리어 이 광풍이 주님의 손에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광풍만을 불게 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사실 인생에 파도가 일어나는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를 분석하고 알았다고 해서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해결 할 수 있는 폭풍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을 뒤흔드는 광풍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주님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폭풍만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확신하기는 기도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늘 잔잔해진 파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모든 고통은 끝나지 않을 고통인 것처럼 다가오지만 고통에는 시작이 있는 것처럼 또한 끝이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우리에겐 고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모든 고통은 소멸할 고통일 뿐입니다. 고통이라 여겨지는 모든 것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그분을 만난 사람은 고통을 뛰어넘는 놀라운 평안과 기쁨을 맛봅니다. 파도가 잔잔하기 전에 이미 영혼을 평온케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바람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태풍이 지나간 새벽바다는 어느 때 보다 더욱 잔잔하듯이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했다면 우리 마음속에서 이미 잔잔한 고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통 속에 평안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신 것은 또한 더 큰 소망을 위한 것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이를 소원의 항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영혼을 녹아내리게 하는 폭풍을 만나 본 사람만이 항구를 향한 목적과 소망에 간절해집니다. 항해 중 풍랑을 만나면 그 만큼 항해는 늦어 질 것이라는 통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사실은 아닙니다. 그 고통 가운데 우리는 아픔을 기억하지 못한 체 빠르게 시간을 보냈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는 파도를 타고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폭풍이 심할수록 소망이 간절해진다는 것입니다. 태풍은 우리의 목적을 바다가 아닌 항구를 더 갈망하게 만듭니다. 항해 속에 폭풍을 만남은 그러므로 또 하나의 은혜인 듯합니다. 폭풍으로 인해 육지를 더욱 사모하게 되듯 이 땅에서 더욱 하나님 나라를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그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기도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항해에서 만나는 폭풍은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거친 파도를 일으키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만 있다면 도리어 그 곳이 열정적인 기도와 찬양의 자리가 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그 기이하신 일을 노래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의 항해 가운데 혹 부르짖지 못하고 그래서 참 평안의 안식도 없이 소원의 항구도 보지 못하며 표류하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면 그들을 우리의 배에 건져 참 항해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 됩시다. 참 소원의 항구를 향하여 함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