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히브리서 11장 4절~32절은 믿음의 본을 보였던 허다한 증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벨과 에녹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무엘과 선지자들에 이르는 수많은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다른 모든 사례들을 다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한다(히 11:32). 이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살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을까.
이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와 구원에 이르는 방법에 관한 내용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구원의 의미
“구원”의 문자적인 의미는 건짐, 도움, 해방을 뜻한다. 그래서 성경에는 재난이나 불행 또는 쳐들어오는 적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나(시 34:6, 행 7:25), 병의 치료를 받는 것(마 9:22)을 가리켜 구원이라고 말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가장 일반적 의미의 구원은 죄와 관련이 되어 있다. 즉 죄의 용서, 죄의 법적 책임과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죄로 말미암는 지옥 형벌에서의 건짐 등을 가리켜서 구원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원은 다음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죄를 용서받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즉 거듭남(중생)과 의롭다 일컬음을 받는 것(칭의)이다. 이러한 일은 믿는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경은 이런 의미의 구원을 가리킬 때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라는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과거에 이미 완성된 것을 나타내는 동사(과거 완료형)로 표현한다(눅 7:50, 딛 3:5 참조).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날로 거룩하여져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과정(성화)이다. 이것은 믿는 순간 시작되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성경은 이런 의미의 구원을 가리킬 때는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는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현재 진행형)로 표현한다(히 10:39 참조).
셋째는, 죄의 결과에서 완전히 벗어나 조금도 죄의 흠과 티가 없는 상태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 즉 완전히 영화롭게 되는 것(영화)이다. 이것은 죽는 순간에 가서야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경은 이런 의미의 구원을 가리킬 때는 “주께서 나를 ···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딤후 4:18)라는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장차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나타내는 동사(미래 완료형)로 표현한다(빌 2:12, 약 1:21 참조).
그러므로 특별한 언급이 없이 구원이라고 하면, 앞에서 말한 세 가지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죄를 용서받고 거듭나는 것(중생)만을 제한해서 구원이라고 하려는 사람도 없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성급한 대답을 하기에 앞서 어떤 의미의 구원을 말하는 것인지를 먼저 밝혀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이라야,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하거나, ‘구원받고 있습니다’ 또는 ‘구원 받을 것입니다’ 라는 식의 상황에 맞는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구원받는 방법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밝혀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는 구원을 받는 방법이 매우 분명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라는 말씀들이 이를 입증해준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기도, 선행, 봉사, 노력, 헌금, 종교의식, 세례 등 사람의 그 무엇도 구원을 위한 조건이나 공로(功勞)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고 말씀했다. 이 사실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시면서(요 14:6), 만일 있다면 그는 “절도요 강도”라는 말씀으로 우회적 표현을 통해 교훈하기도 하셨다(요 10:1, 8).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달리 구원받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이전에 살았던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원리를 인류의 모든 사람들, 즉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시킨다. 그러므로 그들의 구원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할 수 있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이라고 구원의 방법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앞에서 밝힌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의 직접적인 말씀에서 확인이 될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의 저자가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로서의 구약 시대 성도들을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대전제로 밝히기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고 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분명하게 강조한 점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 당시나 신약시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육신을 가지고 직접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장차 오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문설주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거나, 장대 끝에 달린 뱀을 바라보거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받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그들의 구원에 이용된 어린 양이나 뱀 등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장차 오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물로 제시된 것이었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아직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예표들 속에서 그림자로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들이 우리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는 못해도, 이미 육체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과 똑같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가, 아니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돌이켜 보는가 하는 시점(時點)만이 다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이 없다.
로마교회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례제도가 생겨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을 하신 후, 육체가 무덤에 머물던 사흘 동안에 집단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원은 세례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다. 세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증거로 받는 것, 즉 구원의 결과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에는,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양심에 따른 심판의 결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구원의 조건은 양심에 따른 심판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이다. 설사 양심에 따른 심판을 해본다 하더라도 의롭다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없는 어린 아이까지도 다 알 수 있듯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 예외 없이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롬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