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려워 할 일이 아닙니다.(10월29일 주일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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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두려워 할 일이 아닙니다.』      2006년10월 29일 주일1부
▣.본문 : 여호수아1:1-9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거리 풍경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초보운전자의 차량입니다.
운전면허증을 따가지고 처음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자동차에 "초보운전"자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를 붙이고 다닙니다.
일본은 간단하게 만들어진 표시를 사서 붙이고 다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초보운전 차량은 "초보운전"이란 글이나 표시 대신에 여러 가지 글을 써서 붙이고 다닙니다.
그 말들이 재미있습니다.
"이 차에 어린 운전자가 타고 있어요."라는 애교 섞인 글도 있고
"실력은 초보, 건들면 람보"라는 협박성 글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치겠지요? 저는 환장하겠 수 다“ 라는 이해를 부탁하는 글도 있고 알아서 조심하라는 말인 "좌우 백미러 전혀 안 봄." 이라는 글도 있습니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말들에 어는 정도 동감을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과정을 거쳐 노련한 운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더기가 무서우면 장을 담지 못하는 것처럼 초보운전이 두려운 사람은 운전을 배울 수 없습니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 동물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 동물원을 구경하려면 약 두 시간을 걸어야 된다고 합니다.
이 동물원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아온 맹수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맹수들을 다 구경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구경하는 "우리"가 나타납니다.
그 우리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씌여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
사람들은 저마다 궁금해서 우리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을 찾아 두리 번 거리는 사람 앞에 한 장의 대형 거울이 나타나게 되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동물은 바로 너 자신 인간이다."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인간이 동물 가운데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동물일까요?

아이를 낳고 이 아이들이 첫 걸음마를 할 때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쁘고 대견해 하는지 모릅니다.
대게 아이들은 1년쯤 되면 걸음마를 하는데 10달 정도에 걷기라도 하면 야단 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합니다.
10달도 안됐는데 애가 걸음마를 한 다구 난리를 지깁니다.
그 장면을 송아지가 보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 웃긴다고 했을 겁니다. 송아지는 낳자마자 뛰거든요.
인간이 100m를 9초대에 뛸 수 있게 된 것이 몇 년 안 되었습니다.
메스컴은 이런 사람들을 두고 인간 탄환이라고 극찬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든 동물들을 모아 놓고 달리기를 시합을 시켰다고 한다면 인간은 과연 몇등을 했겠습니까?
아마 인간은 강아지 한 마리에게도 이기기가 힘들 겁니다.
높이뛰기, 멀리뛰기 뭐하나 이길게 없습니다.

담배를 끊지 못해 늘 신앙생활에 당당하지 못했던 집사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가족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담배를 피지 않겠다!"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베란다에 나가 비스듬이 기댄체 버금버금 담배를 피워대며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비난을 했겠지요.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또 담배를 피우시느냐고?"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며 그러더랍니다.
"앞으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누가 옆으로 서서 피우지 않겠다고 했어?" 그러더랍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며 무능하고 나약한지 아십니까?
쥐란 놈은 지진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피신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수무책 당합니다.
개미는 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알고 높은 곳으로 이사를 해 둡니다.
거미는 어디로부터 바람이 불어올 것인가 방향을 미리 알고 거미줄을 칩니다.
사람이 하찮은 미물보다 못 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러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인간이 땅을 정복하고 이 땅에 문명세계를 건설 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에겐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 정신이 있습니다.
때문에 비젼이 없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위대한 동물 인간에게 주신 축복가운데 하나가 개척정신, 도전정신입니다.
이 개척 정신과 도전 정신을 가지고 비젼을 성취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두려워 할 일이 아니라 기대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편 한길만 찾아다니지 말고 비전을 품고 개척 정신과 도전 정신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고 바른길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두려워 할 일이 아닙니다"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만들어 지면서부터 줄곧 한 가지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비전은 세상을 떠돌며 유목생활을 하던 족장시대에도, 그리고 430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에도 그리고 비참했던 포로 생활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민족 공동체의 비전이었습니다.
드디어 그토록 들어가길 원했던 그 비전에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 지도자 모세가 죽음으로 다시 한 번 좌절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죽었어도 이 비전만큼은 포기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비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워 다시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비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 온갖 도전과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는 그 비전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여호수아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서는 단지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비전을 성취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서는 오늘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비전을 이루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는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비전을 가슴에 품고 그 비전과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꿈을 꾸기로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에게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목사님의 그 엄청난 꿈들이 이 땅에서 반드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그때, 로버트 슐러 목사는 "아니요, 제 꿈은 이루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 꾸었던 모든 꿈들이 이루어지고 나면 또 다른 꿈을 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본문을 읽을 면서 "강하라,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읽을 때에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아,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었구나" 감탄이 되십니까? 아닙니다.
"강하라"는 얘기는 지금 여호수아의 마음이 약해 질 때로 약해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담대하라"는 얘기는 지금 여호수아가 잔뜩 겁을 먹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는 얘기는 지금 여호수아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로버트 모건이 쓴 「홍해의 법칙」이란 책에 보면 성경 도처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수 없이 나오는데 이 말씀을 하는 성경의 모든 상황은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렇게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여호수아를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찾아오신 하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야 모세가 죽은 것은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내가 도와줄게 네가 해봐“

오늘 이 자리에 혹시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두려워하며 낙심하며 좌절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오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사랑하는 딸아? 그건 두려워 할 일이 아니란다.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 너는 반드시 그 문제를 해결하게 될 거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연약한자를 찾아오십니다. 낙심한자를 찾아오십니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시며 낙심한 자를 위로하고 눈먼자에 눈을 뜨게 하며 벙어리에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441장: 날 사랑하심)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그렇습니다.
세상은 연약하면 무시합니다. 연약하면 왕 따 시킵니다.
연약하면 바보 취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할수록 더욱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일어나라'는 단어가 618번 나옵니다.
이 시간 절망에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사업에 문제를 안고 오신 분이 계십니까?
일어나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비전의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구경꾼처럼 앉아 있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넘어져 있지 않습니다.
비젼이 이루어 질 때까지 최선을 다 합니다.
예) 굶주린 사자 = 토끼 = 노침 = 친구 사자가 놀림
    너는 사자로서 토끼 한 마리 잡지 못하는 바보 멍청아!
  이 때 이 사자 하는 말
“토끼는 목숨이 달려 있었지만 나는 저녁 한 끼가 달려 있었을 뿐이야”
한 끼 때우는 식의 삶은 비젼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생명걸고 미쳐야 두려움을 극복하고 비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분이 계십니까?
의지할 곳이 없어 무엇인가를 붙들어야 살아 갈 수 있을 만큼 약해진 분이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은 상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해야할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 만날 수 있는 찬스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일어나십시오.

세상은 강한자 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힘없는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쓰시기에는 너무 잘난 사람들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름대로의 계획과 방법이 너무 철저히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실 틈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작아지고 빈 그릇 되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에 하나님은 내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땅의 용기가 아니라 하늘의 용기를 주십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7장에 보면 미디안 군사가 쳐들어오자 기드온이 300용사를 뽑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용사를 모집 할 때 3만 2천명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겨 둡니다.
이 300명은 나머지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이 300명은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이 들을 물가로 데려 갔습니다.
이 때 다른 사람들은 무릅을 꿇고 물을 마셨지만 이 300명은 개 처럼 물을 혀로 핥텄습니다.
여러분 개가 먹이 먹는 거 보셨습니까?
입은 먹이통에 있지만 눈은 사방을 경계합니다.
바로 이 모습을 한 300명으로 수십만 미디안 군사를 무찌릅니다.
이 전쟁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심전력을 다하는 소수를 통해서 일 하시며 하나님의 위대 하심을 들어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대성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믿음이란 인간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믿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사람은 참 위대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은 세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첫 문장은1절에서 2절까지인데요
그 내용은 "내가 ... 주는 땅으로 가라" 는 것입니다.
둘째 문장은 3절에서 4절까지인데요
그 내용은 "너희 지경이 되리라"
그리고 셋째 문장은 5절과 6절입니다.
그 내용은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여기 세 문장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주셨다"는 겁니다. 이미 주신 비전을 이루시겠다는 겁니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축복의 땅을 얻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그것은 미래의 천국보장과 현실의 승리보장입니다.

누가 이 비전을 이룹니까?
출애굽 백성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긍정적 보고를 했던 사람입니다.
적극적인 영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능력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는 승리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제외해 놓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는 능히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이 '발바닥 사건'입니다.
발바닥으로 밟는 것을 주겠다고 하시고 그리고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합니다.
여리고성 싸움을 앞두고 떨어지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5장의 여리고성 사건도 발바닥 사건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도 발바닥입니다.

수4장 18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넘쳐 흘렀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발바닥으로 요단강에 들어서자 요단강이 갈라졌고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육지를 다시 밟자 요단강이 합쳐 흐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맨발바닥으로 지내는 사람은 종 밖에 없습니다.
모든 자유인들은 신발을 신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호수아 1장, 3장, 4장, 5장에 걸쳐서 계속 발바닥 사건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민감 하라는 뜻입니다.
즉, 성령에 민감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에게 민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맨발로 선 종들에게 하나님 앞에 항복한 졸병들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일에든지 두려워 마시고 도전하여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싸우도록 버려두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여러 번 하신 말씀 중 '믿는 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받고 적게 믿으면 적게, 안 믿으면 못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기 만하면 또 말씀대로 순종 만하면 아낌없이 다 주시는 것입니다.
주신 분은 아끼지 않으시는데 어찌하여 마음껏 밟지 못하는가?
큰 은혜를 받아 큰 힘을 얻어 크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실업자와 실업가와의 차이를 아십니까?
낮에 노느냐 밤에 노느냐의 차이입니다.
두려워 떨고 있느냐 도전하며 극복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일 할 때 일 할 줄 알아야 큰 사람입니다.
약속의 땅은 발바닥으로 밟아야 얻는 땅입니다.
발 벗고 나서는 자가 얻는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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