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혼자가는 길이 아닙니다.(11월5일 주일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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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2006.11.5 주일1부
◈.본문 : 창세기 5장 21절 - 24절

에녹은 이 세상에서 365년을 살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되려 간 사람입니다.
에녹은 65세까지 창세기 5장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평범한 사람인 에녹이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부터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이란?
비오는 날 우산을 밭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입니다.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시므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지금 시대에 365년을 살았다면 굉장히 장수한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 짧은 생애입니다.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셋은 920년을 살았습니다.
에녹의 아들 무드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거기에 비교하면 에녹의 생애는 아주 짧은 생애입니다.
지금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생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세상에서 장수하는 것은 복이지만 장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애가 짧은가 긴가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짧은 생애를 보냈지만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이 땅에서는 짧은 생애로 마쳤지만 영원한 세계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부여는 인생의 길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얼마나 많은가 적은가 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가가 중요하고, 세상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가 올라가지 못하는가 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맛과 의미가 달라집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 동행하면 평탄한 길도 괴롭게 가야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하면 험한 길도 행복하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하고 동행하면 가까운 거리도 멀게 느껴지고 먼 거리도 짧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사람과 무거운 물건을 함께 들면 그 짐을 내가 감당해야 하기에 힘이 듭니다.
그런데 동일한 물건을 힘이 좋은 사람과 함께 들게 되면 훨씬 수월하게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께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감당해 주시기 때문에 인생이 쉽고 가볍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성 크리스토퍼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달픈 길을 가는데 길거리에 어린아이가 보채고 있습니다.
나 혼자 가기도 힘들기에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 크리스토퍼가 어린아이를 업고 길을 갑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어린아이를 업고 가니 더 피곤하고 고달파야 하는데 오히려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콧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그가 “네가 누구니? 너를 업고 가니 발걸음이 가볍구나”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말했습니다.
“네가 업고 가는 나는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나사렛 예수다”
성 크리스토퍼는 부지중에 예수님을 업고 간 것입니다.
왜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을까요?
등 뒤에 업히신 예수님이 도와주어서 가벼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여러 번의 전쟁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언제나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리고성처럼 견고한 성은 쉽게 무너뜨리고 대승을 얻었는데, 작고 약한 아이성 전투에서는 패배하고 36명이 죽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 두 전쟁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진리는 일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함께 하시지 않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은 사람들은 우리가 동행하고 싶어도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동행할 수가 없는데, 세상에서 높은 자들보다 더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낮고 천한 우리들과 동행하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마 28:20에서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사 41:10에서는 우리를 굳세게 하시며 도와주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약속을 받은 우리는 무덤덤 합니다.
감동도, 기대도. 기쁨도 없습니다.

만약에 배용준이나 이병헌이나 최지우가 개인적으로 전화해서 당신이 날 원하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열일 제쳐놓고 달려 가겠습니다.
라고 했다면 흥분하고 난리 법석을 떨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표현으로 녹두방정을 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함이 제일 큰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은 40년간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동행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밀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광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고 발이 부릍지 않게 하셨습니다.
신 8:4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또 하나님의 세밀하심을 알 수 있는 것은 성막 가운데 임재 하시고 임재의 증거를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떠올라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치 “광야에 너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동행하셨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마음을 써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참 행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도 발이 부릇 트지 않게 하셨던 것 처럼
우리가 걷는 길이 혹시 구비도는 험난한 고개길이라 할 지라도 힘들지 않고 콧 노래 부르며 넘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경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이 읽혀진 책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유명한 책입니다.
이 책은 성자로 불리는"토마스 아켐퍼스"가  썻는데 그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토마스 아켐퍼스야, 네가 너무도 나를 사랑하고 내 뜻을 받들어 살려고 하니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니 어서 네 소원을 말하라”,
“주님, 주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니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니 어서 말하라”
"주님 함께 계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소원이 없습니다."
"아니다. 말하라"
세 번이나 물어 봐도 여전히 토마스 아켐퍼스는 "더 이상 소원이 없사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함께 하심에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네 번째 음성이 들려옵니다.
"토마스 아켐퍼스야, 너는 아무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는 가장 좋은 것을 가졌느니라"
→.이 때 만약 저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이렇게 했을 것이다.
주님! 어디 계시다가 이제 오셨어요. 그리고 소원이 하나인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적어도 삼세번 이라는 말도 있는 데 3가지는 들어 주셔야지요.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의 템스강 옆에는 영국의 유명한 사람들이 묻혀있는 웨스트민스트 사원이 있습니다.
이 사원에 가면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 형제를 위해 세워진 기념비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 기념비에는 웨슬리목사가 했던 세 마디가 새겨져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군은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은 계속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특히 세 번째 말은 웨슬리에게 큰 힘을 주던 말씀인데 그는 임종을 맞아 죽기 직전에 팔을 높이 들고 승리의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위의 예를 통해서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부자고 가난하고를 떠나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혹 돈이 없고, 몸이 병들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사실 하나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모습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1. 일상생활 속에서 동행합시다.
에녹은 자녀를 낳고 가정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니 금욕주의도 신비주의도 은둔주의도 아닌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산으로 들어가든지 사막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특별히 사랑해서 주님에게만 집중하고 싶어서 세상과 구별된 장소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졌던 주님을 향한 열정은 우리들이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교회에서는 주님을 만나 영적인 힘을 공급받고, 그 힘으로 세상에 나가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세상 사람들 을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산속의 소금이나 사막의 빛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배는 항구에 붙잡아 매 놓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다 위를 달리는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약 배가 파도를 두려워하여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면 배로서의 길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두려워서 세상 속으로 나가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삶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다.
그러니 교회에 자주 오라는 말 좀 하지 말라. 교회에 자주 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배가 항해를 하려면 반드시 항구에 들려야 합니다.
항해 거리가 길면 길 수록 항구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많이 준비를 해야 합니다.(기름을 비롯해서 식수. 쌀, 반찬. 과일등)
그런 다음에 목적지를 향해서 출항을 해야 합니다.
그게 배의 사명입니다.

이와 같이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해내려면 반드시 항구 역할을 하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크면 클 수록, 급하면 급할수록 더 자주 교회에 오셔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새벽에도,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주일은 얘기할 것도 없이 1부 2부를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드려야 합니다.
 
배가 항해하지 않고 항구에만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항구에서 필요한 것을 채웠으면 바다로 달려 나가야 합니다.

마찬 가지로 은혜 받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만 있으면 안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의 능력을 받고 말씀의 양식을 먹었으면 당당하게 가정으로 돌아가고 세상으로 나아가서 그들을 섬기고 받들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 시켜야 합니다.
맹수도 오랜 세월 동물원 우리에 갇혀 살면 야성을 상실합니다.
사육사가 주는 먹이만 먹다 보면 스스로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 동물을 정글에 풀어놓으면 굶어 죽든지 잡혀 먹히기 십상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야성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향해 믿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방안퉁소’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밖에서는 실력이 없어 피리를 불지도 못하면서 집안에서는 시끄럽게 삐리리 삐리리 소리를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집에서는 잘 난척하는데 밖에 나가서는 수줍어서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을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입니다.
간혹 남자들 가운데 집안에서는 사자 같은 데 밖에만 나가면 순한 양 같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이 가족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을 대할 때는 순한 양같이 부드러워야 하고 세상에 나가서 자신의 일을 감당할 때는 젊은 사자처럼 당당하고 위엄있게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는 사자같이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 같은 데 세상에 나가서는 맹수를 두려워하는 순한 양처럼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덜덜 떠는 약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고베성복교회 성도들은 영성과 실력을 갖춘 하나님에 용사들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주신 힘을 얻어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에서는 남들 이상으로 노력해서 신앙과 실력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동행합시다.
히 11:5에 보면 에녹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정말로 복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히 11:6에 보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히11:6에서는 두 가지 믿음을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지금도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신화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지금도 천지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둘째, 좋으신 하나님으로서 우리들을 만나 주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말씀합니다.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짐을 지워 주시는 분이 아니다.
 
다윗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 마다 하나님께 해답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행 13:22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심을 믿었기에 환란 중에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에게도 시험과 환란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가 상 주시는 하나님을 찾기에 역전인생이 가능한 것입니다.
당장 어려운 것 같아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내하고 노력하면 화가 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은 믿는데 두 번째 부분인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아계시지만 무서운 하나님, 살아계시지만 자기에게는 인색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믿음의 축복을 누리려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무서운 하나님, 인색하신 하나님이 아닌 참 좋으신 하나님, 선한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 좋으신 아버지, 기도를 들으시고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모든 좋은 것을 은사로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롬 8:32에 보면 좋으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들까지 주신 분입니다.
아들을 주셨으니 무엇이든 주지 못하실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은사로 즉 선물로 주십니다.
선물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거저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으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변함없이 동행합시다.
 
에녹은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해서 300년을 변함없이 동행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좀 힘들어도 변하지 않고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왕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 때 교회는 건강하고 성장하고 목회자의 목회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데 중간에 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변하는 이유는 대체로 몇 가지입니다.

첫째는 환경이 좋아져서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환경이 좋아지니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봅니다.
어려울 때는 교회에도 열심히 나오고 기도도 열심히 하던 사람이 환경이 좋아지니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를 멀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는 그 복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잘 사용하라고 주시는 것인데 주신 복으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어떤 화가가 최후의 만찬 그림을 그렸는데 포도주 잔을 얼마나 잘 그렀는지 사람들이 포도주 잔을 보면서 너무나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하니 붓으로 포도주 잔을 뭉개 버렸습니다.
주님께 집중되어야 할 시선이 포도주 잔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이 주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환경이 어려워지니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경이 좋을 때는 하나님을 잠 섬기다가 환경이 나빠지니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항상 섬겨야 하는 분입니다.
 
셋째는 사람을 보기 때문에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 할 수 있고,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내 믿음이 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넷째는 육신과의 싸움을 포기하기 때문에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갈 5:17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립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싸우다 보면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육신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싸움에 포기하면 믿음이 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중단됩니다.
잠 24:16 말씀대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육체와의 싸움은 내의지로 안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됩니다.
철저하게 성령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으십시오.
좋으신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육체를 이기는 것은 성령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만큼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육신을 이기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지 집중할 때 탁월함이 나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일에 집중했던 사람입니다.
에녹은 모든 힘을 다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을 불평하며 원망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든 생각은 하나님께만 집중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볼록렌즈가 빛을 한 곳에 모아 물체를 태우듯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집중했던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분야에서 집중력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들 인생의 꿈과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서 그들의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고 인생을 불태웠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께 집중합시다.
하나님과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이 부어주시는 비전에 집중합시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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