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헤치고 불꽃처럼 살다간 ‘ET할아버지’
교육자 채규철씨 별세
교통사고로 3도 화상 30차례 성형수술 오그라든 몸으로 농촌계몽·청십자운동
“…저기가 어디야,아름답구먼.나 이제 급히 감세"마지막 말 남기고…
▲ 온몸 화상을 딛고 농촌계몽 한 길을 걸어온 채규철씨의 화상 전 모습.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
‘E.T.할아버지’ 채규철(69)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평생을 불꽃처럼 살아온 재야교육자 채규철씨가 13일 오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채씨는 지난 10일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한 뒤 수술을 앞두고 13일 오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조선일보 2005년 6월 2일자 D1면 참조)
함경도 함흥에서 농촌운동을 하던 목사 아버지와 신여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채씨는 어렸을 때부터 농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노라 다짐했다. 6·25 때 혼자서 서울로 온 채씨는 길거리에서, 천막교회 한쪽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며 공부해 서울시립농업대(서울시립대학교의 전신) 수의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 덴마크에 유학을 다녀온 후 1961년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교사직을 시작했다. 그러다 장기려 박사(전 부산 복음병원 원장. 평생 가난한 이와 함께하다 1995년 한푼 남긴 것 없이 별세. ‘바보 의사’로 불렸다)와 함께 일종의 의료보험인 ‘청십자의료조합’ 운동을 시작해 복지운동에 뛰어들었다.
▲ 전신화상의 상처를 이기고 불꽃처럼 살다 간 교육자 채규철씨. 사진은 지난해 여름 두밀리자연학교에서 찍었다/조선일보DB 하지만 청년 채규철의 인생은 1968년 교통사고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으면서 큰 도전을 받는다. 승용차에 실어뒀던 시너통이 터져버린 것이다. 생전에 채씨는 “병원에 누워 있는데, 울고 싶어도 눈물샘까지 타버려서 울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30차례가 넘는 성형수술 끝에 채씨는 한쪽 눈을 잃고 손가락까지 오그라든 몸으로 살아남았다.
‘E.T.할아버지’라는 별명은 어린이들이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채씨는 희망으로 상처를 덮었다. 채씨는 “이 몸이 요즘 돈으로 6000만원 넘게 들여 성형한 몸인데, 사람들이 진가를 몰라줘”라며, 웃음으로 상처를 넘기곤 했다.
채씨는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청십자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간질환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모임 ‘장미회’를 만들어 의료 복지운동을 전개했다. 농촌 계몽운동에서 시작한 채씨의 교육 사업은 1986년 경기도 가평에 설립한 ‘두밀리자연학교’로 연결됐다. “어린이가 바로 세상”이라는 철학을 이곳에서 실천했다.
두밀리학교 설립 멤버였던 구천서 단국대 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는 학교였다”며 “채 선생은 자기 돈을 몽땅 털어 두밀리를 키웠다”고 했다. 두밀리자연학교는 지난해 가평군에 의해 농지를 불법 전용했다는 사소한 이유로 아쉽게 폐교됐다. 생전에 채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는 데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해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 받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