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의쉼터

12억 까먹고 호떡장사로 다시 선 김민영 씨

이경숙 0 4,927

쓴맛 단맛 다 봤다 `나는 행복 장사`

12억 까먹고 호떡장사로 다시 선 김민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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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와이셔츠에 하얀색 나비넥타이가 무심코 길을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까만색 중절모까지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채 간간히 마술을 선보이는 노신사의 모습이 유쾌하게 다가온다. 어디 한 곳 빠질데 없는 '멋쟁이 신사'다.

하지만 이 '멋쟁이 신사'가 있는 장소는 숙대역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1평 남짓한 노점상. 나비넥타이를 맨 호떡장수 김민영(52) 씨의 일터다. 하루종일 비좁은 공간에 서서 호떡을 반죽하는 일이 꽤 고단할 법 한데 잔뜩 신이 난 표정의 그에게서는 연신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성공'한 사람 아닌 '행복'한 사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돼있더라.' 유명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김씨 역시 어느날 눈떠보니 하루아침에 스타가 돼 있었다. 5년 전쯤인 2003년 KBS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 12억원 실패를 딛고 일어선 재기 성공 사례로 출연하면서부터였다.

"주식으로 크게 망한 뒤 호떡장수로 재기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았던가봅니다. 이후 연이어 TV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오고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더니 어느날 정신차리고 보니까 제가 이른바 '호떡스타'가 돼 있는 거에요. 처음에는 길가다 마주친 낯선 사람들이 달려와 반갑다며 인사를 청하는 일이 어색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저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알아주는 분들이 많은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크죠."

사실 그의 호떡집은 TV출연 전부터 숙대 근처에서는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그러던 것이 매스컴을 한번 타고나자 무섭도록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의 호떡을 맛보기 위해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어났다. 1개 500원하는 호떡으로 하루 500만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다.

호떡집이 유명세를 타자 그의 이름을 딴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일종의 프랜차이즈 사업이었던 셈이다. 김씨는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호떡 만드는 노하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타 프랜차이즈 사업과 달리 '김민영 왕호떡'이라는 그의 이름만 빌려줬을 뿐 김씨는 각 점포에서 얻은 매출액의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전국에 열게 된 '김민영 왕호떡' 프랜차이즈 점포만 해도 한때는 130개에 달하기도 했다. 1평 남짓한 노점상에서 이루어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큰 성공이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제일의 '호떡스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저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길거리 위의 노점상에서 호떡을 팔고 있고 소중한 제 아내를 하루종일 좁은 공간에 서서 호떡을 굽게 만드는 바보 같은 남편입니다. 이미 큰 실패를 겪어 본 저이기 때문에 지금 '성공'이라 불리는 것들도 한낱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남들처럼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내 옆을 지켜주는 가족들이 있고 그 가족들을 굶기지 않을 밥벌이가 있으니까요."

◆산산이 부서진 12억의 꿈

지금은 이토록 당당하게 '행복'을 일구어낸 그지만 자살을 기도했을 만큼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2001년 멋모르고 주식에 손을 댔다가 12억원이라는 큰 돈을 잃고 난 후였다. 이미 7년이나 지나버린 아련한 과거일 뿐인데도 아직까지 김씨는 그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김씨는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KT에 근무하며 꽤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던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지난 1999년 직장 동료들의 권유로 주식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2달 사이에 3배 가까이 이익을 내면서 주식에 맛을 들였다. 가만히 앉아서 하루아침에 대기업 월급쟁이의 한달 월급에 맞먹는 돈을 버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돈맛'을 알게 된 김씨는 회사 업무시간 틈틈이에도 주식거래에 매달리는 등 온종일 주식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무려 12억원. 월급쟁이로선 상상도 못할 큰 돈을 주식시장에서 하루아침에 벌어들인 것이다..

김씨가 주식에 일가견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친척들과 회사 동료들도 그에게 선뜻 거금을 내놓고 투자를 부탁했다. 그때만해도 자신감에 가득차 있던 김씨는 그렇게 남의 돈을 받아들면서도 '일이 잘 못 될거라는' 의심은 단 한순간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2000년 들어서면서 주식시장에 가득 차 있던 거품이 한꺼번에 폭락하고 만다.

"그때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요 했어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한 것이 남들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떠들어도 내가 손 쉽게 12억원을 벌었으니 20억원은 못벌겠냐는 오만에 가득차 있었던 겁니다."

김씨는 정작 자기 손으로는 직접 만져보지도 못한 12억원이라는 큰 돈을 잃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빚만 늘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손을 벌려 얻은 돈도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잃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2억원까지 났던 수익은 물론 투자 원금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빚이 2억원까지 늘어나 있었다. 가족들에게도 직장 동료들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그 때는 정말 '죽으면 끝이 날거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한달 동안을 자동차 안에 벽돌 2개와 노끈을 갖고 다니면서 죽을 자리만 찾아다닐 정도였으니까요." 김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가 힘겹게 말을 이어간다. "정말 죽으려고 아버지 묘소에 찾아가 목을 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그때 아버지 앞에서 죽으러 간 게 아니라 살려고 그곳에 갔던 것 같아요. 목을 매는 순간 아버지의 호통치는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르는 거에요. '죽지마라. 살아야 한다. 가족들을 생각해야지.' 분명히 환영일텐데 아직도 그때 들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선명합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나만 죽는다고 끝이 아니구나'였다.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아내와 마주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 정리합시다. 회사도 그만두고 모든 것을 다 새로 시작합시다. 내가 빵 장사를 해서라도 당신과 우리 아이들만큼은 굶기지 않을 겁니다. 다 새로 시작합시다." 그렇게 손하나 흔들어주는 이 없이 도망치듯 익산을 빠져나와 서울로 이사를 온 것이 2001년 5월 무렵이었다.

◆남과 다른 것이 경쟁력이다

막막했다. 번듯한 아파트에서 부족함 없이 살던 네 식구가 하루아침에 10평 남짓의 전셋방에서 북적대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루 먹을 끼니조차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때도 다반사였다.

그런 그에게 퀵서비스 배달 일자리가 들어왔다. 김씨는 롱타이에 양복을 잘 차려입은 채 퀵서비스 사무실에 첫 출근했다. 사장도 직원들도 모두 그를 미쳤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손님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양복 입은 아저씨'를 찾는 문의 전화가 많아진 것이다. 김씨는 "남들이 아무리 비웃어도 남과 달라야 살아남는다"는 소신에 자신감을 얻었다.

얼마 뒤 점포를 얻게된 김씨의 머리 속에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남들과 달라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차 있을 뿐 상황은 최악이었다. 가게자리를 둘러보니 목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하필이면 호떡장사의 비수기라는 여름철 이었다. 한 여름에 좁디좁은 1평 공간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호떡을 굽자니 그를 '미쳤다'고 비웃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당연히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열흘 동안 호떡 반죽만 먹었을 정도로 호떡의 맛을 열심히 연구했다. 1년쯤 지나자 어느 정도 호떡 맛은 인정받게 됐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김씨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웃음치료사, 레크리에이션, 마술사 자격증까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즐 수 있는 건 모두 다 배웠다. 호떡을 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간간히 마술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나비넥타이와 중절모, 그리고 마술로 무장된 호떡장수 김민영 캐릭터의 탄생이었다.

"목이 안 좋아서 장사가 안된다거나 비수기라 손님이 오지 않는 다는 건 아마추어들의 불평일 뿐입니다. 진정한 프로는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손님을 불러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비수기인 여름철에 호떡장사를 시작해 지금도 사계절 내내 호떡장사로 먹고 살지 않습니까. 그대로 잘 나가던 옛 시절을 생각하면 이 나이에 노점상에서 나비넥타이를 매고 마술쇼를 하고 있는 제가 창피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단순히 호떡을 파는 게 아니라 길 위에서 사람들에게 제가 지닌 행복을 나누고 있는 겁니다."

성실하게 호떡장사를 한 덕에 이제는 그 많던 빚도 다 갚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만한 33평짜리 주택도 마련했다며 활짝 웃어보이는 김씨. 어려운 역경을 딛고 다시 찾게 된 '행복'이기에 그의 1평 노점상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인생은 오늘도 즐겁기만 하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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