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의쉼터

성도에게 도전을 주는 글

이경숙 0 3,732
성도에게 도전을 주는 글
 
**[성도에게 열매가 없으면 구원을 의심해야 한다]**

교회의 헌금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의식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교회의 헌금은 대충 십일조, 절기헌금, 주정헌금, 특별헌금 등등 이 있다.

이러한 헌금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헌금만으로 모든 것을 해야 된다는 것은 신약시대 성도들의 자세가 될 수 없다. 또한 성도들이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금을 했으니 이제는 다했다는 것도 큰 문제라는 것이다.

십일조와 헌금을 교회에서 드렸으니 이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사고는 성도의 자세가 아니다. 성도는 헌금 외에 자신의 것을 통해서 구제하고 봉사하고 선교하는 일을 계속해야 된다.

만약에 교회의 헌금으로 구제와 봉사와 선교를 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잘못된 이방인들의 사고와 같다. 이방종교가 유지되는 것은 기부금과 같은 공양비 등으로 유지된다. 이방종교도 종교적인 의무로 얼마든지 기부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인도, 티벳, 유대인, 천주교 등등)

성도가 헌금으로 모든 일을 다 했으니 더 큰 복을 바라고 더 잘살기를 바라는 것은 기복주의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은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이방인들과 같이 교회에 기부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는 것으로 생각하며 이렇게 헌금한 것으로 복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식이다.

이방 종교인들은 드리고 세상에서 무엇을 얻고자 기대한다는 것이며 그들은 그것을 보상받으려는 자들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중에도 이러한 악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방인과 참 성도가 다른 것은 이방인은 자기가 행한 것을 통해서 복을 세상에서 보상으로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참 성도는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즉 이방인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그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것이며 또 그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살기에 자녀답게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이다. 그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녀들이 마땅히 행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서 세상의 복을 누리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환경을 찾는다.

이러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될 자들이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썩어져 가는 것에 미련을 두고 그것을 두고서 자랑하는 자들은 영원한 것을 정말로 믿고 사는 자인지 궁금하다. 영원한 것을 얻은 자가 세상에서 무엇을 더 얻어서 잘 살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매우 이중적인 자세이다.

성도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지금도 순교하는 자들이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믿음으로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굶어서 죽은 사람들도 많고 그들에게 식량과 복음을 동시에 전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가 더 넓은 집을 찾는 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다.

성도는 그 신분자체가 돈으로 살수 없는 신분이며 그가 얻은 구원은 물질을 초월하는 구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면 그는 성도라는 신분을 세상의 신분으로 착각하며 마치 다른 종교인들과 같이 의무적인 자로써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성도의 신분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구원 얻은 자의 최소한의 양심은 썩어져 가는 것을 나누어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신앙의 양심으로 교회에 헌금하는 것으로 일을 해야 된다는 사고는 모두 철회되어야 한다. 헌금은 헌금의 목적대로 드리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주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하늘에 상급이 될 것이다. 하늘에 상급을 쌓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최소한의 신앙의 양심을 버리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찾으려는 세상에서 찾으려는 세상의 것들로 나타난다. 하늘에 상급을 쌓아두는 것은 고사하고 세상에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투자하는 자들은 세상이 망할 때에 세상과 함께 망할 것이다. 그는 영원한 곳을 믿지도 못했고 나아가 믿지 못했기에 그 곳에 상급을 쌓아둘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하늘의 내세를 믿는 것은 그 곳에 상급을 쌓아두는 것으로 반듯이 나타나게 된다. 뿌리가 건강하면 열매도 많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성도의 뿌리가 썩어있으면 열매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최소한의 구원의 양심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물질을 나누는 것은 구원 얻는 자의 최소한의 양심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지 교회와 개인성도들은 마치 내가 잘 살고 남은 나보다 잘못 사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비열하고 조잡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성경은 우리가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도들이 각각 빈부의 차이가 있는 것이 이상해야 되는 것이지 마땅하다고 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육적인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이 되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함께 나누는 공동체이다. 성경은 평균케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얻은 모든 소득과 이익과 재산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마땅하다.

지금 문제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세상의 방식으로 산다는 것이다.
하늘의 통치가 아닌 세상의 방법으로 살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종교적인 종교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들이 과거 종교인들인 유대인과 종교지도자들의 삶이었다.

50평사는 사람이나 24평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에게 물질이 많고 적고를 따지는 자들은 육신에 속한 자들이다. 영적인 사고가 아닌 육적인 사고를 하고 산다는 것이다.

50평사는 사람은 더 좋은 집을 사모하거나 자신이 남보다 복을 얻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기복신앙이다.

 24평에 사는 사람은 더 좋은 34평의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세상에서 더 복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세상 중심은 마치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아래는 세상의 기준으로 본 복의 기준이다.(한국에서)
집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로 본다.
전세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이 어느 정도 떠난 자들이다.
20평에 사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24평사는 사람은 조금 복을 얻은 자들로 더 복을 얻어야 될 사람이다.
34평사는 사람은 평균으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54평사는 사람은 복을 받은 자의 삶이다.
100평 이상으로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영웅으로 십일조를 했다면 십일조로 복 받았다고 떠벌린다.


그런데 위에 있는 대상들이 모두다 십일조를 착실히 하고 있었는데 각각 다르게 나타난 것이라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위와 같은 사고는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우스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세상의 복은 그 기준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보다 복 있는 자들이다. 세끼 식량도 없어서 굶는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복 있는 자들이다. 더구나 과거 조선시대나 어려운 시대의 사람들에 비하면 위의 사람들은 모두 복 있는 자들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일하게 되면 굶어서 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18평에 사는 것도 행복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굶어서 죽는 사람 순교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18평에 사는 사람도 부한 삶이 될 것이다. 우리가 장차 영원히 살아야 될 곳이 있는데 이 땅에 있는 넓은 집이 부럽다면 신앙의 눈으로 볼 때에 그는 바보와 같은 자이다. 참으로 바보이다. 나그네가 영원한 것을 믿지 못하는 바보이다.

이 얼마나 세속화된 생각인가?
겨우 물질을 가지고 우리의 복을 논하는 이방인들과 같은 현실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기준이 땅이 아닌 하늘의 기준으로 바뀌어야 될 것이다.

하늘의 기준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오직 구원함을 얻었다는 것이며 그 것은 우리의 모든 것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신앙으로 살기에 세상에서 무소유 정신이 하늘의 기준으로 사는 정상적인 삶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무소유 정신이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성도들은 마땅히 주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기에 주님과 같이 무소유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매우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빈부의 차이가 나타나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복의 기준이 물질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공동체인데 그들은 평균케 하려는 하나님 보다 하나님의 복으로 부한 자가 되는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세상의 방법으로 살고 있으면서 성도라고 교회라고 부르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살지만 교회는 자본주의 논리가 아닌 신본주의 신앙 공동체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이 마땅하다. 구원을 세상의 물질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이렇게 우리는 철저히 세상에서 세상의 방법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 하늘의 통치를 받는 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도들의 착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이 굶어 죽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저주로도 표현하고 지구상에서 일어난 재난으로 사람들이 죽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평가한다. 당연히 받아야 될 심판으로 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믿기만 하면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죄인이 다른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마치 우리는 의인으로 구원을 얻은 자이며 그들은 죄인으로 마땅히 저주를 얻은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기복적인 신앙인들의 기발한 사고인가?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을 알고도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름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진실해지자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아닌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한 자녀는 원수가 주리면 먹을 것을 주어야 된다.

성경에 의해서 우리는 생각하자.
먹고 입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 이상으로 감사하자. 주님의 고통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는 주님처럼 순교는 당하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와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죄라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나누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통해서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같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나누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면 우리는 심판을 받는다.

열매 없는 나무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무로 세워졌는데 그 나무에서 세상에서 열매가 없다면 그는 세상이 심판될 때에 베어져서 심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자녀로써 마땅히 살아야 되는 것이다. 그 자녀가 거짓된 자녀로 산다면 하나님이 그를 구원할 것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모든 자들이 행한 대로 드러날 것이다.
성도들이 참으로 열매있는 나무로 나타나는 자들이 있는 자들도 있고 잎만 무성한 나무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성도들은 잎만 무성한 자들이면서 그 잎을 열매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매있는 자들로 나타나려는가? 최춘선씨 처럼 나그네로 살아야 된다.

최춘선씨처럼 나그네로 사는 사람이 24평 34평 54평으로 만족을 누리고 살려고 하겠는가? 나그네는 소유가 아닌 무소유의 사람이다. 나그네로 사는 자는 삶에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사는 자이기에 나그네로 사는 자는 이 땅에서 영원한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나그네의 무소유보다 소유정신으로 사는 것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본다.

당신을 하나님이 심판 하실 것이다.
그리고 당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심판 하실 것이다.
당신이 도와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가 당신이 외면해서 지옥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구원 얻었다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분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마치 우리보다 더 악해서 심판되어 죽어가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마치 우리만의 하나님으로 만들고 그들에게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이방인들은 모두 심판되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방인들을 저주하였다. 이것이 그들이 스스로 의인이 되려는 자들로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우리들로 다른 사람들이 구원함을 얻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이다.

그들이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전도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미리 그들은 안돼! 라고 평가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그들과 다른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도 죄인이며 그들도 죄인이다. 다만 다른 것은 우리는 의인으로 여김을 얻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으로 얻은 것이 아닌 은혜로 얻었다는 것이다. 은혜로 얻은 자가 다른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정당하다고 보는 것은 스스로 의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과거 죄인이었는데 그 죄인이 의인으로 여김을 얻고 있는 자들이지 죄인인 내가 스스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내가 다른 죄인을 구원하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과거 나와 같은 저들에게도 하나님의 의가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전하지 않으며 또 그러한 의를 얻었다는 자들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산다면 하나님의 구원에서 그들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열매 없으면 망한다.

참 교회 공동체는 빈부의 차이가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며 공동체의 평균이 정상적인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성도이며 하나님의 공동체의 지체라면 그 만한 책임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한다.

만약에 하나님의 자녀가 빛이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 사람과 같고 하나님의 자녀가 공동체의 지체와 같이 살지 못하고 열매 없는 무성한 잎만 남긴다면 이 사람의 구원을 누가 보장하겠는가? 천사 혹은 목사가 이 사람의 구원을 보장하겠는가?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거룩함을 입고 거룩한 자가 거룩한 삶으로 살아야 되며 성령으로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열매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열매의 정도를 논하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열매가 있는가? 없는가? 을 두고서 논해야 될 형편이라는 것이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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