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는 일본 고유의 자연종교이며 신도의 신을 제사 지내는 곳이 신사이다. 신도에서 말하는 신은 무수히 존재하며 처음에는 자연물이나 자연현상도 신이라 여기는 샤머니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점차로 조상을 숭배하는 일본인의 마음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 고대의 신앙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습속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던 신앙으로써, 자연발생적인 것인데 이것이 체계화된 것은 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가 일본에 전래되면서부터 이다.
불교의 전래는 544년 이라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당초에는 대륙으로부터 문물의 수입에 열중하고 있던 귀족계층이나 도래인 등 특정 집단만의 것이었다. 종교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시대를 시대를 선도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불교를 이해하고 귀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윽고 국가의 종교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불교의 신자가 된 천황도 있다.
일본 사회에는 천황이 제정을 함께 행사하는 이데올로기와 조직이 확립되어 있어서, 윤회사상이나 천황의 권위를 위태롭게 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주장하는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의 성립배경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연관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불교측에서는 불교가 국가를 위해 보탬이 된다고 하는 이론화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한편 신도측에서는 고대로부터의 원시적 신앙을 불교에 대항 할 수 있는 이론과 조직을 겸비한 명실상부한 하나의 종교로 편성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게 되는데, 그것이 국가신도의 성립으로 연결되게 된 것이다. 불교와 신도는, 다소 혼합되는 점이 있긴 했으나 일체화되는 일없이 서로 구별을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형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도 시대에는, 제도로써 사원이 매장행사를 책임지고 관리하게 됨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일본인이 불교와 관계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상의 신앙으로써 신도는 계속해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원시적 종교의 기반 위에 고도로 조직화된 종교가 더불어 존재한다고 하는 현상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전파의 경우에 있어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메이지유신과 함께 신도는 천황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종교가 되고, 신사는 정부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된다. 결국 국가와 종교의 합체는 국수주의적인 기풍을 몰고 왔으며,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국가 신도가 널리 보급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2차 대전후 국가와으 관계가 단절되고 신사신도와 종파신도만이 남게 된다. 결국 신도는 일본인의 감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오늘날의 일본인은 신도에 대해 신앙심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으로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