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한 과거지만 진실을 역사로 남기자"는 오키나와(沖繩) 주민들의 결연한 의지가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시도를 막아내고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살 사건에 일본군의 강요가 없었다는 역사 왜곡에 대해 지역 주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 항의하면서 일본 정부가 교과서 기술을 복원하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했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이 보수 우경화의 흐름을 꺾은 것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관방장관은 1일 기자회견에서 "오키나와 현민들의 기분을 어떤 방법으로 받아들여 (교과서 기술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인지 지혜를 모아보겠다"며 문부과학성에 대응을 지시했다. 이에 도카이 기사부로(渡海紀三朗) 문부과학상도 검정 제도의 틀 속에서 가능한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문부성의 검정 결과에 따라 교과서를 간행하는 간행사들도 문부성에 '정정 신청'을 내기로 했다. 출판사 스스로 역사 왜곡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정정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3월 문부성이 내년도 고교교과서의 '집단 자결' 관련 기술에서 일본군에 의한 명령.강제 등의 표현을 "오키나와 전투의 실태를 오해할 우려가 있다"며 삭제토록 하는 검정 결과를 발표하자 강력히 반발했다. 현의회를 비롯해 41개에 이르는 전체 기초의회에서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물론 지난달 28일에는 11만여 명이 참석한 '오키나와 현민 궐기대회'를 개최하며 정부의 역사 왜곡에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 문부성은 이번 교과서 기술 변경 과정에서 소수의 관계자에게 검토를 맡기는 등 철저한 검증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군 강요 부분을 삭제토록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부성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항의에 대해 그동안 "심의회 전문가들의 판단으로 행정이 개입할 수 없다"고 변명했지만 핑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감추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1년 교과서 검정 때도 일본군에 의한 주민 살해 기술을 삭제하려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2년을 끌다가 결국 기술을 복원했다. 도쿄= 김동호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