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Time의 약자로서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매일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간이며,성경 말씀을 통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 뜻, 계획 을 듣고 묵상하며 삶에 적용함으로써 삶의 변화와 성숙을 이루고자 하는 경건 훈련입니다.
인간 내면에는 두 가지 종류의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악 된 삶을 살려는 경향과 성령의 소욕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는 경향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그리고 이 두 가지 경향은 결국 두 가지 운명, 즉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살아가다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운명과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다가 영생한 생명을 얻게 되는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다시 말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악 된 생을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살아가다가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거룩한 삶을 가는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과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이 필요한데, 그 훈련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훈련이 바로 QT인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근본적인 원리는 다음의 문구에 나타나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행위를 지배하는 확고한 원리이며, 그분의 일관성을 보여 주는 법칙으로서 물질적인 영역과 도덕적인 영역, 자연과 인간의 품성에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언제나, 예외 없이 우리는 우리가 심는 것을 거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심을 것인지를 결정함으로써 우리가 거두게 될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 결정할 수 있다. 만일 귀리를 추수하기 원하는 농부라면 귀리를 심어야 할 것이다. 귀리가 아닌 보리나 밀을 심은 것은 어처구니없는 짓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그 성장이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오직 심은 것만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부지런히 심어야하며, 생각하는 것(우리의 생각을 선한 것)에 고정시키는 것 과 사는 것(특히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 둘 다를 위한 훈련된 습관을 개발해야한다”(John R. W. Stott).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실패해서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보잘 것 없더라도 한 가지 영성훈련에 전념하여 영적 신실함을 배우는 것을 더 좋아하실 것이다” (메조리 J. 톰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말씀을 연구해서 알고는 있으나 살아계신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별로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성령의 인도 아래말씀을 읽는 가운데 말씀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살아있는 능력으로 임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음성이며 하나님과의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교제이다. 마음에 들어와 축복과 능력을 가져다주며, 하나님의 마음에 되 미치는 살아 있는 믿음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음성이다(Andrew Murray)”.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보기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공부를 중시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읽는 것마다 분석과 토론에 붙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생각과 묵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말씀을 쪼개는 대신, 우리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오히려 하나로 묶어야 한다. 말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따지는 대신 어떤 말씀이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며 나만의 개인적 상황과 직접 연관되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말씀을 흥미로운 대화나 논문의 잠재적 주제로 생각하는 대신, 그 말씀이 우리 마음의 가장 은밀한 구석까지 파고 들어오게 해야 한다. 누구의 어떤 말도 여태 들어간 적 없는 깊은 곳까지. 그때서야 비로소 말씀은 옥토에 뿌려진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때서야 우리는 진정 ‘듣고 깨달을’ 수 있다(Henri Nouwen)”.